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아빠는 독서광이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집에는 거실 삼면을 가득 메우고, 안방을 채운 것도 모자라 창고에까지 그득하게 쌓여 있을만큼 책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모습을 찾기 힘들지만, 그 당시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었던 동네 서점보다도 우리집 책이 더 많았을지도 모를만큼 ..  고전부터 당시까지 소설책들은 물론이고 앨빈토플러 같은 석학의 저서들, 백과사전, 각종 어학사전, 하다 못해 너무 두꺼워 혼자 들지도 못할만큼 커다란 의학 사전에 유명 화가들의 명화를 볼 수 있는 화집들까지 즐비하게 꽂혀있는 우리집 거실은 친구들에게도 매우 인기있는 공간이었다.

아빠는 특별히 TV나 라디오를 켜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책을 읽는 분이었다. 자연히 나는 글자를 빨리 익힌 아이가 되었고,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세계명작과 한국 근대 소설들을 떼는 과정을 거친 바람직한 독서 교육을 받은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아빠는 책을 읽으시면 반드시 맨 뒷 장에 서명을 해 놓으셨는데, 그 아래에 책을 다 읽은 후 내 이름을 적어 놓으면, 또 그 아래에 동생 이름을 적어 놓는 것이 우리집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어릴 때 읽은 책들이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수업 외에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왠만큼 국어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고, 모르는 것은 스스로 사전이나 책을 찾아 공부하는 습관을 체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활자와 꽤 친한 사람이었다. 많이 빨리 읽고 잘 외우고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고 ..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점차 비활자 중독증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새로운 활자를 속에 넣지 않고 있었다.

그걸 깨달아 가는 것은 공허한 것이었다. 내가 더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 것 같았고, 나를, 내 생각을, 내가 마주친 현실을 표현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고, 감성의 기름기가 쏙 빠져 바삭거리는 해골 같은 사람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꽤 심각한 점은 책을 잡았을 몰입도가 떨어지고 더이상 무언가를 꼼꼼히 기억하려 하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사실 한동안 인터넷엔 별로 읽을거리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데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비활자 중독증으로 허무함을 느끼게 된 이유는 인터넷에 비로소 읽을거리가 넘쳐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시 활자 중독증에 걸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 하고 그러고 싶고 .. 
profile image

동영상검색 Enswer.me(엔써미)의 꼬날입니다. 음악과 블로그, 회사 다니기를 즐깁니다. 조카 승준이와 놀아줄 때와 맛있는 떡볶이 먹을 때, 멋진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프로필 사진 속의 남자는 좋아하는 대만 배우인 언승욱(Jerry Yan)입니다. :-)